마가렛 버크 화이트는 뉴욕의 브룽크스에서 태어났다. 뉴저지 주 바운드 브룩에서 성장하였고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인 아버지와 수완 좋은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사진은 처음에는 취미로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와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고 아버지가 돌아가 신후 학비 마련을 위해 사진을 찍어서 팔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우게 되었다. 1927년 코넬 대학교에서 예술학사학위를 받은 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상업 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한다. 주 타깃은 건축 및 산업 사진이다.
이런 대상은 여자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 사진은 인물이나 풍경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마가렛 버크 화이트가 찍은 산업시설과 인공물에 대한 사진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이 산업사진의 전문가로 명성을 쌓게 만들었다.
1929년 헨리루주가 만든 경제 전문지 포춘(Fortune)의 전문 사진가 겸 부 편집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보도사진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35년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의 위험한 난간에 올라 촬영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마가렛 버크 화이트는 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을 지워버리고 한 명의 사진가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든다. 이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마가렛 버크 화이트의 암실 조수로 알려져 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는 세계 최초의 , 여성 최초의 란 수식어가 많이 붙은 사진가 다. 버크 화이트는 외국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소련 산업단지를 촬영하였고 미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독일의 소련 침공 장면도 촬영하였고 여성 최초로 미공군 종군기자가 되어 생생한 폭격 현장을 촬영하기도 한다.
1936년 라이프 지가 창간되면서 마가렛 버크화이트는 날개를 단다. 당시 그녀는 포춘지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였는데 라이프지 창간 작업에 동참하게 된다. 창간호의 표지 사진이 그녀가 촬영한 Fort Pect Dam이다.
라이프지 창간호에는 댐 사진 이외에도 마가렛 버크화이트의 사진을 9페이지로 나누어 포토 에세이 형식으로 실었다. 이렇게 사진을 통해 객관적인 사실을 그대로 알리는 보도사진의 형태는 결국 포토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1941년에는 소련의 스탈린의 최초로 찍은 사진가가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남자들도 찍기 어렵다는 전장의 최일선에서 특종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간디 사진은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도 관심의 영역을 넓혀 인종 차별과 종교분쟁 등으로 고난 받는 인도를 찾는다. 간디를 만나 그의 사상에 감명을 받기도 한다.
“사람을 꿰뚫는 방식으로 묘사하려는 모든 사진가는 어떤 사진에서도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대상을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더 많은 가슴과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1952년 라이프 지로 한국전쟁 취재를 의뢰받고 한국 전쟁의 참혹함을 알린다. 한국전쟁의 종군기자로 활동 중 뇌염에 걸린 후 계속 병으로 고생하다. 19969년 라이프를 퇴직하고 1971년에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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