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터키에서 출생했다. 가족과 함께 난민 이주로 캐나다에 정착한다. 어렸을 때 영업사진사의 삼촌 밑에서 사진술을 배웠다. 그 후 미국 보스턴에서 당시 유명한 인물사진가 존가로의 문하로 들어가 수업한다. 1932년 캐나다로 돌아와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활동한다.
1941년 캐나다를 찾은 윈스턴 처칠을 찍은 사진이 미국의 사진잡지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처칠경 사진이 나올 수 있었던 에피소드
어느 날 윈스톤 처칠이 영 연방인 캐나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처칠이 온다는 것은 캐나다 국민들의 영광이었다. 처칠이 캐나다 국회에서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국회에서 잘 아는 사람이 유섭 카슈에게 처칠 초상사진을 촬영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낱 동네의 무명 사진가였던 카슈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혼자 나름대로 처칠의 인물에 됨됨이를 연구하고 강력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로 묘사할 작정으로 스튜디오에 세팅을 해놓고 처칠을 기다렸다고 한다. 스튜디오문을 열고 들어오는 처칠의 첫인상은 카슈를 실망시켰다. 시가를 물있 들어오는 처칠의 모습은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닌 마음 착한 동네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예정된 대로 촬영을 마치고 나가는 처칠을 카슈가 쫓아나가 물고 잇던 시가를 아무 말도 없이 잡아 뺀 후 재촬영을 요구한다. 일개 사진가의 무례한 행동에 기분이 나빠진 처칠은 체면 때문에 화를 낼 수도 없고 마지못해 다시 촬영에 응하지만 화가 난 얼굴로 찍히게 된다. 이사진이 처칠의 강력한 이미지를 나타내게 되고 이사진이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카슈의 대표작이 되고 세계의 유명한 인물사진가로 거듭나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유섭 카슈는 인물사진에 하나의 전형을 수립한 사진가 다. 인상 깊은 포오트레이트를 통해 사람의 얼굴을 전설적인 인물로 승화시키고 있다. 깊이 있고 야무진 성격묘사는 대상인물의 의지, 지도력, 창조력, 또는 내면을 쉽게 감지하게 해 준다.
카슈는 특히 표정이나 손, 몸에 악센트를 줌으로써 찍힌 인물의 성격을 서술적으로 표현함은 물론 그 성격을 이상화하였다. 처칠 사진이 유섭 카슈의 대표작이다. 그는 말하기를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일을 배워야 한다. 마음이야 말로 사진기의 진정한 렌즈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특히 내적 성격 표현에 치중하고 있으나 화면구성에 있어서는 초창기 인물사진의 기초를 다진 데이비드 옥타비어스 힐의 영향으로 얼굴과 손의 위치관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으며 탁월한 사진기법으로서 묘사의 극단적인 선예성과 흑과 백의 명확한 배치의 묘에 남달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 동안 1만 5천여 명의 사진을 찍었고 15만여 장을 인화한 20세기를 빛으로 기록한 인물사진의 거장으로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뜨거운 생애를 반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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